육아

몬테소리 교육의 창시자 마리아 몬테소리, 그녀의 삶과 놀이의 중요성

NirvanaLee 2018. 6. 24. 23:06

마리아는 아이가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결코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사와 부모의 ‘제1 행동철칙’으로 내세웠다. 그는 또 주변에 있는 단순한 사물 = 훌륭한 교재로 활용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눈금이 새겨져 있고 숫자대로 정돈돼 있는 구슬을 산수교재로 썼고, 조그만 나무판자는 아이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눈 운동자료로 활용했다. 아이들은 이러한 도구들을 갖고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집중력을 발휘했다.

 

놀이를 강제할 수 없고 놀이감을 정해줄 수 없다. 수많은 교구 중에 가장 좋은 교구는 엄마와 아빠다.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교육가인 몬테소리가 고안한 교육법으로 아동의 지능과 독립성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 아동의 연령에 따라 영아 ~ 2세 반, 2세 반 ~ 6, 6 ~ 12세까지의 세 집단으로 나누어 각 집단에 필요한 특수한 환경을 만들어 교육하는 과정을 구축하고자 했다.

 

몬테소리가 생각했던 교육은 근본적으로 인간 발달에 관한 모델이며, 그 모델을 기반으로 한 접근법의 교육이다. 그녀가 생각했던 교육은 "준비된 환경"안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인데, 준비된 환경이란 기본적인 인간의 특성, 연령에 따른 어린이의 특수한 특성, 각 어린이의 개성에 맞춘 교육 환경을 의미한다.

 

1) 몬테소리 교육법을 시작하게 된 계기: 장애 어린이와의 만남
교육에 대해 더욱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은 로마 대학교 부속병원의 정신과 조수로 있으면서 장애인  지적 장애인을 처음 접하고, 특히 장애 어린이에 대해 의학적으로만이 아니라 교육적인 치료의 필요를 절감했다1898 국립 장애인 학교의 책임자가 되었고, 1906년 로마정부로부터 위임 받은 로마시 빈민가 출신 3-6세의 어린이 60명을 맡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그녀의 독창적인 '몬테소리 교육법(The Montessori Method)'을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아동은 본래 정신적으로 자기발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아동이 자유롭게 자기표현과 자기발전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교사는 아동의 활동을 면밀하게 관찰·측정·기록하여, 이를 참고로 아동에게 적당한 지시를 하면 된다고 했다. 첫째로 아동의 자기활동을 돕는 정리된 환경을 제공하고, 둘째로 교사는 뒷전에 물러서서 필요할 때만 지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지적 장애가 있는 어린이에게 놀이감을 주자 훌륭한 학습을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장애가 없는 어린이에게도 적용시키려 했고, 색채감각의 자극과 대소, 장단의 지각을 위해서 여러 가지 크기의 나무조각·구슬 등의 놀이감을 이용하였다. 그는 먼저 '놀이감'을 이용해 아동의 감각을 발달시켜 자발적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학습을 시키며, 그 다음에 활발한 자기활동으로서 자기교정, 훈련이 돼 나아감을 보았다.

 

그녀는 지적장애가 있는 어린이부터 장애가 없는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한 교육방법인 '감각훈련 놀이감(creative materials)'을 발견한 것인데 이것은 프리드리히 프뢰벨(F. Froebel) '은물을 발견한 것과 비슷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국제몬테소리협회가 결성된 것은 1929년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국제몬테소리대회는 1938년 영국에서 열린 제8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된다. 마리아는 파시스트의 통치로 1934년 조국 이탈리아를 떠나 있어야 했다. 파시즘과 나치즘이 유럽을 지배하는 동안 몬테소리 교육은 유럽에서 자취를 감췄다. 점령 지역에서 몬테소리 학교는 모두 폐쇄됐다. 왜냐하면 몬테소리 교육이 내세운 ‘자발성’ ‘독립성’ ‘창의성’은 무솔리니가 요구했던 사회 이념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몬테소리 교육이 재개된 것은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의용군에 체포돼 사살된 지 4년이 지난 1949년 정도부터였다. 국제몬테소리대회가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다시 열린 것도 이때였다. 마리아는 1935년 이후부터 집필활동에 매진한다. <아동기의 비밀>(1936), <새로운 세계를 위한 교육>(1946) <인간의 잠재력 교육>(1948) <집중력 있는 사고>(1949) 등을 1~2년 간격으로 출간하며 마지막 여생을 아동교육에 바쳤다.

 

유럽 언론에 의해 ‘유아원의 기적’으로 소개된 ‘몬테소리 교육법’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스페인,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뉴질랜드, 인도, 중국 등에 자신의 이름을 딴 몬테소리 아카데미를 세웠다. 몬테소리 교육법은 자기 교육(Self-Education)을 기본으로 한다. 때론 교사가 특수한 ‘교육자료’를 마련해 설명하기도 하지만, 교사는 교실 뒤편에 남아 있고, 아이들이 스스로 알고, 익히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마리아는 1936년에 펴낸 <가족에서의 어린이>에서 “어린이에 대한 독재는 어른들이 범하기 쉬운 ‘보이지 않는 죄악’이다. 어떤 노예나 노동자도 어린이만큼 무한한 순종을 요구당해본 적이 없다. 이는 수백년 동안 끊임없이 계속돼왔다. 이제 어린이들 편에서 생각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원죄설이나 전성설로 아이들을 억제해야 하는게 당연했다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의 풍파를 겪으며 유럽은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한 국가의 근간이 되는 교육이 발전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그 국가가 처한 상황을 보게 된다면 그 국가의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다음 시간에는 마리아 몬테소리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