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유대인의 교육과 다른 우리나라의 창의교육의 실태

NirvanaLee 2018. 7. 1. 22:18

창의성은 인간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수성이며 사고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창조한 것들이 축적되어 문화가 형성되고 사회발전을 이룬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사를 바꾸어 온 것은 인간의 창의적 산물이다.

 

많은 다양한 일을 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하..


창의성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두 측면에서 설명하는 모란이라는 학자가 이야기 하기를, 첫째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학습을 통해 발달하고 발현되어, 그 결과로 언어, 문학, 예술, 과학과 기술들이 창조 됨으로써 인류문명 발전의 원천이 되었다. 둘째로 개인적 면에서 인간은 창의성에 관여될 때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순수한 기쁨을 맛본다는 점에서 창의성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

 

인간은 창조행위 자체에 만족을 느끼고 또 그것이 자아실현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에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자아실현과 창의성을 상호의존적으로 보고 자아를 실현한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창의성은 자아실현상태에 따라오는 결과로 인식했다.

 

한마디로 창의성의 발현을 위해서는 자아실현, 즉 사회적 개선기능과 개인의 표출 기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사회적 개선기능이라 함은 수단적인 시각에서 현대사회에서 국가나 기업의 경쟁력은(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근로자나 시민, 기업들의 창조적인 역량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에서는 창의적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경제에서 창의성을 토대로 제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정치권이나 경제계에서 흔히 거론되는 사회, 문화, 경제발전을 위해서 국민 들의 창의적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려면 (여기서는 창의력을 가진 인재가 많은 사회가 되려면) 사회 전체의 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개개인의 노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사회 전체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두 개가 같이 갈 수 있게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창의교육이 왜 중요해지고 있는가?

창의교육이 최근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교육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배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지식기반시대에서 혁신시대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똑똑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다르게 생각할 때 비로소 조금씩 등장하는 것이다.

 

혁신시대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발견, 그리고 지식을 융합하여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이 높이 평가된다. 한마디로 확산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정해진 답이 없고, 답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이 창출한 지식을 소비하는데 치중하였던 시대를 넘어 지식을 창출하는 시대로 세상의 추세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빠른 모방자에서 선도자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일부 산업이 선진국을 제치고 세계 선두로 나서는 분야가 나타나면서 선도형 혁신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로운 분야를 계속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남들과 다른 것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교육에서도 단순히 지식을 흡수하는 단계를 넘어서 지식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 춘 창의적 인재 양성이 시대적인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인적 측면의 창의성은 개인의 독특한 잠재역량 또는 개성을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 개인 누구나 일상적 평범한 수준의 창의성(little-c)을 갖추고 있어야 사회가 다원화되고 풍요로워진다. 사회는 이런 개성을 신장 하고 개인의 관심, 선호, 경험을 발현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교육에서는 기존 지식의 맹목적 습득보다는 배움의 과정을 중시 한다. 룬코는 개인적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틀에 박힌 상투적인 과정과 방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경험을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이 있을 때 창의적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스턴버그는 창의성 그 자체가 패러다임 발전에서 추진력 이 된다는 ‘창의성 추진력 모형’을 제안하면서 창의성의 공헌을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1) 현재의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보존하는 공헌, 2) 현재의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거부 공헌, 그리고 3) 다양한 현재의 패러다임을 통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통합 공헌이다. 헤겔의 변증법, 정 반 합과 약간 유사한 구조 같기도 하다.

 

3) 우리나라는 창의적인 인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뭘 하고 있는 건지 잘은 모르겠으나 20년이 넘었는데 가시화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 정부에서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쭉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교육과정 개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창의성교육은 1955년 제1차 교육과정 총론과 교과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창의성 교육이 중요시 된 것은 19955.31 교육개혁에서부터다. 창의성을 함양하는 교육과정을 위해서 필수과목을 축소하고 선택과목을 확대하며 수준별 교육과정 운영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창의성교육은 영재교육이라는 특수한 교육 형태로 발전되어 왔다. 2000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제정되고 2002년 시행령이 제정됨에 따라 영재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되었다. 영재교육에서 교육방향과 교과 교육과정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의성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영재교육은 영재교육원, 영재학교, 영재학급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만 초중등학생의 1.87%에 미치지 못해서 선진국에 비해 서 턱없이 적은 숫자이다.

 

그것도 IQ지수라는 케케묵은 테스트로 아직도 아이를 나누고 있다는게 통탄할 따름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EQ, 다중지능 등의 여러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아이들이 얼마나 잘 외우고 빠른 나이에 몇 개의 언어를 한다던가 하는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면서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왜곡되는 것이 현실이다.

 

차처하고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창의적 인재 양성은 국가의 핵심적인 교육목표로 많은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먼저 이명박 정부는 2008년부터 창의성 교육을 인성교육과 함께 우리 교육이 추구해야 할 주요 교육방향으로 설정하였으며, 2009 개정 교육 과정에 창의성을 중시하여 편성했다. 같은 해 12월에 ‘창의, 인성교육 기본방안’을 수립하여 학교교육활동 전반에서 창의성과 인성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비교과 교육과정의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창의적 체험활동 강화정책,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학교경영을 촉진하기 위해서 추진 되었던 창의경영학교 정책을 말한다.

 

그 다음 박근혜 정부는 교육정책의 방향을 창의적 인재 양성에 두고 있었다. 교육부는 2013년 업무계획에서 ‘창의인재 양성’을 교육정책 목표로 제시하였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채택한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서는 ‘창의인재’를 교육 분야의 국정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에 20138월 미래부, 교육부, 고용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창조 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방안’을 발표하여 창의적 인재 양성을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천명했다. 정부는 창의적 인재의 역량을 키우고 창의성을 장려하는 문화조성을 위한 11개 세부 추진 과제를 제시했다.

 

이공계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인식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과학기술 인재 진로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와 연계된 진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부 육성방안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취업 이후 등을 생애주기별로 나눠 창의적 역량을 주입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 경악한 것은 창의적 역량을 주입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모짜르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셰익스피어를 찍어내겠다고 말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동안 했던 교육을 그대로 하면서 명칭만 바꾸다니 굉장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중등 교육과정에 체험형 수업 등의 교육을 강화하고, 소프트웨어 분야 등 주요 산업정책과 연계된 마이스터고를 신설했다. 또 융합형, 체험형 ‘무한 상상실’을 운영하고 이공계 학생에게 인문학 수업을 강화해 ‘통섭형 인재’를 키우는 정책도 실시했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는 지난 정부에서도 현장 접목을 시도했지 만 만족스러운 성과를 못 낸 정책이다. 관련 법률과 제도, 교육현장의 의식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변했을까? 교육정책의 방향이나 국가교육과정에서 지난 수십 년 간 창의성 교육을 강조하였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창의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도 창의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창의교육에 대한 처방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 못하고 있다. 창의성을 그저 엉뚱한 생각, 자유분방 한 사고나 행동, 역발상 내지 확산적 사고 정도로 생각하여 학과지식을 습득하려는 노력이 창의성 발현에 방해가 된다고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창의력의 원천을 개인에게만 두어 가정, 사회, 기업, 문화 등과 따로 노는 사회문화적 요인도 문제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더욱이 교육과정에서도 총론수준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불과하여 교과교육을 선도하지 못한다. (그냥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라! 라는 특명 하나 떤진 셈이다. 마치 공장에서 기계를 찍어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창의성에 대한 지식과 창의성 교육방법에 대한 이해 부족, 행정 당국의 행재정적 지원 부족 등이 주된 이유로 지적 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아주 좋은 롤모델인 이스라엘에 대해 다음시간에 또 알아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