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하시나요?'
설득도 해보고, 무섭게 화도 내보고, 살살 달래면서
아이를 훈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잘 알아듣고 행동이 고쳐 질까요?
장난감 사 달라고 떼쓰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지금 사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고, 떼 쓰면 혼난다고 화도 내보고, 다음에 말 잘들으면 사준다고 달래면 아이에게 건강한 사회적 기술들이 생길까요?
이 위에서 언급한 방법들은 전형적인 '부모'가 편해지는 방법입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 부모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자주 쓰는 방법인 것입니다. 당장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쉽게 하는 이 방법들을 통해 아이가 배우는 것은 부정적인 기술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의견을 관철시킬 때는 이렇게 화를 내면 되는구나.'
'살살 달래서 내가 원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구나.'
이런 팩트를 가지고 아이는 똑같이 따라합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알아보겠습니다.
1. 자연적 결과 경험하기
숙제를 안 가져갔다면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의 그 상황을 경험해봐야 합니다. 어젯밤에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늦게 잤다면 다음날 졸린 눈으로 힘들게 수업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자연스럽게 학습해야 합니다.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자기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실수들로부터 안전하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학교입니다. (학교는 다른 여느 사회기관보다 안전한 곳입니다. 안전한 곳에서 위험을 대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비입니다. 사회는 나가면 정글입니다. 누구도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뭐 학교도 항상 친절하지는 않습니다만 말이죠.)
이것을 '자연적 결과 경험하기'라고 합니다. 대부분 아이의 선택을 돕고 아이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경험하게 하나, 부모로서 아이에게 간섭해야 하는 경우가 크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연적 경험의 결과를 얻기에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할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찻길에서 뛰어 놀려고 할 때, 맛을 보려고 하는데 독인 경우 등입니다.
둘째는 자연적 경험의 결과를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입니다. 양치를 안 하면 충치가 생기지만 오랜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울 수 없습니다. 충치가 생기는 원인이 꼭 양치를 안해서라기 보다 여러가지 복합적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자연적 경험의 결과가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경우입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굴 때나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할 여러가지 상황이라면 그 전에 주의를 주고 교정을 해야 합니다.
위의 상황에서는 부모가 문제에 개입해서 해야 합니다. 그 때 무조건적인 훈계나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보다 훌륭한 방법들이 많습니다. 자연적 결과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안 돼!'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질문하기'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하기
동생이랑 싸우지 말라고 했지? 엄마가 몇번이나 말했어? 응? 형이 좀 양보하고 그래야 지?
형제간 싸운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엄마는 형에게 '질문'으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지금 이야기 할 질문하기는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질문의 목적은 '설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답정너 이런거 아니겠습니까.
싸움을 말린 다음 감정을 가라앉히고 질문을 시작해 봅니다. (아래의 몇가지 단계를 순서대로 따라서 질문하시면 됩니다. 꼭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지만 저런 과정을 밟으면 됩니다.)
1. 원하는 것이 뭐였니? (무엇을 해결하고 싶었을까? 너의 마음이 어땠을까?)
동생이 내 장난감 가지고 놀지 않았으면 했어요.
2. 그래서 어떤 방법을 사용했니?
처음에는 말했는데 막 말을 안들어서 한 대 때렸어요.
3. 그 방법이 효과적이었니?
별로요. 저는 장난감만 돌려줬으면 했는데, 결국
화내고 싸웠고 장난감도 부서졌어요.
4. 다음에는 어떤 방법을 사용해볼래?
안 때리고 말로해보고 안 되면 엄마한테 말할게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는 1-4번까지 진행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아래 6단계까지 진행합니다.
5.너의 행동이 동생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동생은 나랑 놀고 싶어서 일부러 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을 텐데, 내가 가지고 놀지 말라고
하고 때리고 해서 외롭고 슬펐을 것 같아요.
6.너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법이 있을까?
동생을 때린 걸 사과할게요. 그리고 동생이 원하는 걸 들어줄래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의 현실은 아직도 지식을 축적시키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즉, 시계를 두고 시계의 기능에 대한 지식은 가르쳐도 그 시계가 왜,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가르치지 못합니다. 시계의 기능을 아는 것이 지식이라면, 시계는 시간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며 태양, 지구의 자전, 지구 축의 기울기 등이 시간을 만드는 기본 요소라는 것을 찾아가는 것은 지혜의 교육입니다.
따라서 지혜의 교육은 지혜와 지식을 함께 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원이 다른 교육입니다. 앞으로의 시대에서 지식을 축적시키는 것은 더 잘하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AI인공지능의 등장입니다. 더욱 빠르게 계산하고, 더욱 정확하게 계산합니다. 단순한 것은 모두 대체될 것입니다. 앞으로 인간만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일 외에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어떤 질문이 아이를 공부하는 기계로 만들까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의 질문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들
유아들을
키우는 부모들이 범하기 쉬운 질문습관중의 하나가 자문자답입니다.
부모가 질문하고 부모가 답을 하는 습관은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빼앗습니다. 부모의 자문자답을 살펴보면 영혼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아기들이라고
하더라도 생각을 하고 듣는 아이들처럼 대우해 줘야 합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가 엄마를 따라 한 연구소를 들어 왔습니다. 프린터 기에서 인쇄물이 나오고 있었는데 꽤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빠르게 A4용지가 흘러나오고 멈추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꼼짝하지 않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9개월 된 아기의 집중력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10분도 더 넘게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이 다 끝나자 한참이나 더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이 관찰력은 과학자들이 관찰하는 방법과 같다고 합니다. 언어를 모르는 아이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그 호기심을 바라봐 주는 아빠가 되어야 합니다. 혹시 사시가 될 까봐 걱정이 되어서 갑자기 아이를 안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거나, 아이가 귀여워서 집중력을 흐뜨러트리는 행동을 통해 아이의 관심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끝까지 바라보고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아이의 호기심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 지를 보아주어야 합니다.
어린 아기여도 이렇듯 뚫어져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는 몰입이 가능한 이유는 본인이 궁금한 것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세상을 알고 배워가는 것인데 부모가 물어다주는, 주입되는 정보만으로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 정보에는 몰입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 처음 보는 것에 더 큰 흥미를 느낍니다.
그리고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말입니다. "어!! 프린터기의 기능이 무엇이길래 종이에 인쇄되어 나오는 것일까?"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질문은 어른들과 다릅니다. 왜 저렇게 계속 무엇인가가 소리를 내며 나오는 것일까?"
부모가 궁금해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말 못하는 아이의 질문이 무엇일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9개월 된 아이에게 프린터기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무시할지도 모릅니다.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귀여워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부모들과어른들은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지는 않습니다,) 아직 미성숙한 아기로 취급을 받습니다. 부모가 아기들을 성심을 다해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뭐든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여운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의 생각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다 해주려고 노력을 하고,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다 사주려고 합니다. 음식도 유기농이라든지 가장 이로운 음식만을 먹이려고 준비를 합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린다고 한 것은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이상으로, 아이들이 원하기도 전에 무엇이든 다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심리를 이용한 품질 좋은 유아용품이 넘쳐나고 아이들이 가지고 놀 장난감들의 수준도 매우 높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 유아들이 받는 혜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정한 혜택일까요? 질문을 하지 않고 얻는 것들은 질문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나의 질문으로 인한 답을 얻어가는 과정은 희열을 동반하지만 부모가 만들어 준 영양가 있는 답이나 품질 좋은 장난감은 아이의 질문을 완전히 잃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창의성 속에 아이들은 헤엄치고 놀도록만 하고 있습니다. 한계를 부모가 결정해 버리고 아이는 그 룰에 따르게 됩니다. 마치 비커에 가둬둔 벼룩처럼 말입니다. 더 높고 더 먼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아이들은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가 놀 거리도 직접 만들어 놀면 더 좋겠지요. 나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만들어 놓은 것을 잘 가지고 노는 아이로 키워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내가 만들어 보는 아이들은 자신의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살 때 질문을 하는 아이로 만든다면 여든 즉 평생 동안 자신의 질문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수용하는 자세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유아 때 질문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세 살 아이들이 질문을 하게 하려면 부모의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많은 질문을 품고 있지만 많은 생각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생각은 경험과 지식을 동반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만한 경험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세상의 많은 정보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이 무척 많습니다. 많은 활동은 좋지만 스스로 만들어 낸 활동이 아닌 부모가 만들어 준, 선생님이 만들어준 환경 아래에서의 놀이는 아이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 내버리고 해외로 넘어가거나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만 가고 검정고시를 하는 방법 말고는 없을까요? 먼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 대한 개입을 낮춰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문화센터가 많이 발달해서 그 수업들을 보면 거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이가 놀 때 옆에서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럼 아이들은 처음에 몇번은 스스로 하려고 노력하지만 이제 엄마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스스로 노는 방법 조차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기사에 나온 글을 읽었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학원을 투어를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에 시간이 나면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서 PC방에 가고, 함께 놀 친구들은 없고, 다음 학원에 갈 시간에 쫓겨 항상 시계를 봅니다.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 편하자고 애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 안울고 오래 잘까? (0) | 2018.05.18 |
---|---|
질문, 우리를 변화시킬 강력한 힘: AI를 이기려면 오직 인간만이 가진 능력을 키워야 한다. (0) | 2018.05.17 |
이런 질문이 아이의 창의력을 높여준다. (0) | 2018.05.15 |
호기심 많은 우리 아이 질문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② (0) | 2018.05.14 |
호기심 많은 우리 아이 질문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① (0) | 2018.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