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메니우스의 철학과 신학은 교리적인 것이기보다는 교육을 전제한 실천지향적인 신학적 특징을 가진다. (당시 사람들이 신학을 빼고는 이야기 할수 없는 부분이 많은 이유는 종교적인 색채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살고 있는 나라의 국교가 대부분 기독교(프로테스탄티즘)나 가톨릭 계열이었으며,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이 후원하는 곳에서 수학했던 사람이 많다. 또한 가톨릭의 권위가 1000년이 넘게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공고히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유일신 사상인 기독교적 색채를 빼고는 어떤 학문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은 기독교를 너무 옹호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혹시나 있을까봐 이렇게 길게 쓴다.
하여튼 그 당시에 구라파의 철학자 데카르트와의 교분과 그와 나누었던 인식론에 대한 논쟁이 알려지면서, 코메니우스는 기독교적 인식론자(신앙 안에서의 이성적 사고)라는 점이 더 명확히 드러났다.
여기서 데카르트와 논쟁을 했다고 하는데, 코메니우스는 신앙적 가치관을 본질적인 인간의 근본이라고 생각했으나, 데카르트는 가치척도의 절대적 기준으로 인간의 이성이라고 여기는 점에서 많이 부딪치게 되었다고 한다. (교육자였던 그역시 자신이 받았던 교육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나 보다.)
1) 교육사상
코메니우스는 아동의 자발적, 자율적 활동이 허용되는 개방적인 훈육방식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교육은 가능한 한 일찍부터 시작해야하며, 유아가 학습에 필요한 기능이 갖추어져 있기 전에 강요해서는 안되고 인간본성의 자연적
순서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코메니우스는
교육의 목적을 지식을 닦고 도덕심을 쌓아, 신앙심을 길러, 천국의 생활의 준비를 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만 인간의 외면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코메니우스는 또한 교육방법론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자연의 질서에 따른 원리’이다. 코메니우스의 교육방법론을 이른바 객관적 자연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코메니우스의 교수방법론은 경험주의에 입각한 심리학적인 원칙을 기본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메니우스의 교수방법상의 둘째 원칙은 ‘직관주의’이다. 직관주의란 교육의 실제에 있어서 실물에 의한, 또한 직접적인 사물을 통한 교육을 말한다. 따라서 직관주의는 모든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코메니우스의 교육론을 ‘사물교수론’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코메니우스가 주장한 학교제도
연령과 과제에 따라서 교육의 단계를 크게 네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즉,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청년기로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6년간의 다른 구체적인 학교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① 유아기: 어머니의 무릎에서(모친학교)
② 아동기: 모국어 학교
③ 소년기: 라틴어 학교 또는 대학 예비학교
④ 청년기: 대학교와 여행
모친학교와 모국어학교는 남·여 어린이 모두를 위한 것이며, 라틴어학교는 좀더 집중적인 고등교육을, 대학은 교사와 미래의 지도자를 훈련하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모친학교는 각 가정마다, 모국어 학교는 각 마을마다, 대학 예비학교는 도시 단위에, 대학은 각 지역이나 국가 단위에 설치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현재의 학교제도와 흡사하나 6세 이하의 어린이를 위한 교육은 가정에서 어머니가 담당하고 있는 점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요즘은 유아기에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경우가 많다.
2-1) 제1시기, 모친학교
모친학교의 목적과 교육방법에 대해서 코메니우스는 이 시기의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자연히 어머니가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누가 어디에서 교육하든 어린이들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 명확한 개념을 습득하도록 안내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 사물의 명칭을 바르게 말하는 것 등이 강조되고 있다.
도덕적인 훈련에 대해서는 현대에서와 같은 자유로움을 전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의 엄격함과 억압적인 방법을 제안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엄격함과 자율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유대인들과 프랑스인들은 엄격한 부분에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지만, (예를 들어 TV 시청 시간, 식사시간, 간식시간 등) 그 이외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풀어주는 경향이 많다.
2-2) 유아학교
“대교수학”에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후에 “유아학교”라는 책을 쓰게
된다. 어린이는 신이 주신 가장 귀한 존재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어야
하며 그들의 지적 능력, 언어, 도덕성 등이 잘 교육되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17세기의 상황은 어린이들은 원죄에 묶여 있다는 관념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공장과 일터에서 심하게 다루어져 왔기 때문에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아이들은 저임금과 연장근무의 연속이었다. 주70-80시간 근무는 기본으로 했으며 급여는 너무나 적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죽거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코메니우스의 이러한 생각은 획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교육방법적인 측면에서도 프뢰벨처럼 놀이에 대해 구체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의 모방현상과 놀이활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러한 방법을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6세까지는 어머니가 가장 최고의 교사임을 강조하면서 어머니들에게 구체적인 지도에 대한 안내와 충고를 주고 있다.
2-3) 모국어 학교
6세에서 12세까지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코메니우스는 모국어를 배우기 이전에 라틴어나
다른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모든
어린이들은 모국어학교에서 교육받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고등교육을 받기
원하는 남자 어린이들도 직접 라틴어학교에 가기 전에 이 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함을 설득하고 있다.
3) 세계그림지도의
중요성
1630-1640년에 걸쳐 리사에 망명했던 기간에 코메니우스의 중요한 저술과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30년 전쟁이 끝날 무렵까지도 그의 추방생활은 계속되었으나 “대교수학”을 통해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 많은 다른 저서와 활동 중에서 1658년 출판된 “세계그림지도”를 살펴봐야 한다. 이 책은 아주 간단한 설명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학교교육에서 활용되는 책에 그림을 활용한 최초의 시도다. 언어 또는 단어나 개념 이전에 그림으로 안내하는 기본적인 방법상의 원리를 실제적이고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시청각교육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시기 전에 아이들은 식탁 앞에서 이야기 해서는 안되는 그림과 같은 존재로 까지 여겨졌다. (한마디로 그림에서 나온 듯이 얌전하게 앉아 있어야 된다는, 부모나 조부모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서는 안된다는 사상과 교육관을 많은 부모들이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하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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