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가치의 급격한 상승은 축복일까?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모였습니다. 당시 1,300억달러가 넘는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할 방법이 없었던 미국은 50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일으키는 일본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환율 인상(평가 절하)을 추진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상품 가격이 너무 싸 미국이 적자를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어르고 달래고 협박을 동원해 상대국인 일본과 독일의 화폐가치를 높인 합의가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그 결과 합의 당시 달러당 240엔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급격하게 낮아져 그해 9월에는 220엔 정도로, 1년 뒤인 1986년 3-4분기에는 150엔 수준이 됐습니다. 1987년 말에 120엔선까지 낮아졌죠. 협정은 미국이 기대했던 이상으로 2년 만에 50% 이상 절하되었고, 미국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만큼 달러 가치는 떨어지고 엔화 가치가 상승한 것입니다. 당시 수출 강국이었던 일본의 입장에서는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깐동안 버틸 수 있었고 일본 역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습니다.
플라자 합의와 부동산 버블의 붕괴로 시작된 일본의 몰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삼성에서 1,000불짜리 TV 100만대를 미국에 수출한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우리나라 돈으로는 120만원이 되겠죠. 원, 달러 환율이 1,200원일 때 매출은 10억 달러, 1조 2천억 원입니다. 하지만 원화 강세로 환, 달러 환율이 1,000원으로 떨어지면 매출은 1조원으로 하락합니다. 같은 물건을 똑같이 팔았는데 2천억의 매출이 감소한 것입니다. 1개당 가격은 20만원이 하락한 것입니다. 만약 물건을 팔아서 남는 차익이 20만원 정도였다면, 물건을 팔아도 거의 건지는게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R&D 투자는 물론이고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하게 되는 것이죠.
환율은 전 품목에 적용되니 원화강세는 수출에 의존하는 당시 일본 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매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가격을 올릴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판매가 저조해지는 역풍도 예상됩니다. 당시 미국이 일본의 엔화 강세를 만들어 낸것도, 현재 미국이 대미흑자국을 향해 압박하는 이유도 이런 의도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닛케이 지수는 1985년 2만대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서 단 5년만인 1990년 까지 37000을 찍었습니다. 엔고의 축복은 더 적은 엔화로 더 많은 것을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240엔으로 1달러를 사던 것을 120엔으로 1달러를 살 수 있게 된 것이고, 엔화 자본이 넘쳐났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은 미국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습니다. 지금 중국인처럼 세계 여행지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았던 시기가 1980년대 후반입니다.
경기둔화를 우려한 일본중앙은행은 정책금리를 내리면서 부동산과 주식도 폭등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쉽게 빌리면서 시중에 돈이 넘쳐났습니다. 5년 동안 주식 시장이 거의 2만포인트가 올랐다는 것은 사실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죠. 하지만 일본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엔고현상으로 수출에는 불리했지만 제조업이 튼튼하고 경제의 기초 펀더멘털이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그러나 엔고가 재앙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버블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대출총량규제를 실시하고, 일본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올리면서 부동산은 폭락하고 금융은 경색됐습니다. 부실채권이 양산되고 엔고로 수출까지 둔화된데다 금리인상으로 채무가 불어난 대기업들은 연쇄 도산했습니다.
일본에서 잃어버린 10년, 나아가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은 플라자 합의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부동산 버블과 금융시장의 비정상적인 팽창을 더욱 빠르게 만든 것이 플라자 합의 때문인 것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어쨌든 미국은 당시 미국을 따라잡던 경제 대국 일본을 한방에 보내버렸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현재까지 당시의 잘나감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기묘한 인연, 뉴욕 플라자 호텔의 소유주가 트럼프?
당시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뉴욕의 플라자 호텔은 현재 미국 대통령의 소유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전후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보호무역주의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싸움을 걸고 있죠.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인지, 컨셉을 잡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생각들이 그의 머리 속에 있습니다. 대미 무역 흑자국들이 달러를 평가절하해 막대한 무역적자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죠. 우리를 상대로 돈 벌어가면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혜택을 저들이 환율 조작을 통해 빼앗아 간다는, 미국의 인식은 3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백악관이 한미FTA 개정안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힌 환율 관련 용어를 보면 미국의 인식은 더욱 잘 드러납니다. 바로 ‘불공정한 통화 관행(UNFAIR CURRENCY PRACTICES)’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나라를 ‘환율 조작을 해온 나라’로 기정사실화 한 것으로 우리 입장으로서는 다소 치욕스러운 용어입니다. 유럽쪽에서도 한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찍으려 했다가 철회한 것을 얼마 전에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서는 ‘환율 조작국’이라고 직설을 날리는가 하면, 최우방국인 일본에도 철강 관세를 부과한 것을 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를 특정 타겟으로 해서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또 당선된 후 그의 행보와 말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제된 용어를 요구한다는 게 이젠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대부분 깨달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들이 세계대공황 때의 전조라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직 확실히 대공황이 일어난 원인을 찝어내지는 못했지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부흥과 기득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영국, 프랑스 등 열강들이 금본위제도로 돌아갔고, 그러나 역으로 화폐를 과대평가함으로써 각국 수출 시장의 축소를 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 미국의 행보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계의 수출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에게 미국이 가하는 관세 폭탄, 환율 조작에 대한 의심, 기술 이전 등등 수많은 이슈 속에서 현재 경제는 폭풍전야와 같습니다.
특히 USTR에서 약 38조 원(340억 달러) 규모의 800개에 가까운 중국산 제품에 25% 고율관세를 부과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당시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을 이끈 주역 중 한명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을 봤을 때, 현재 미국의 행보는 세계 2차대전 이후 자신들이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본을 훼손하고 신뢰를 완전히 부서뜨리는 행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그래도 이 치킨게임이 끝나려면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됩니다.
트럼프는 이것을 계기로 제조업을 미국 내로 흡수하려는 생각이지만 기업들의 입장은 조금 다른가 봅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가 전기자동차 공장을 중국 상하이에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다른 미국 국적을 가진 기업들도 현재 간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과의 대치는 70%가 넘는 확률로 전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전쟁 후에 전쟁 당사국들이 같이 몰락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죠. 예를 들면 아테나와 스파르타의 30년 전쟁과 같은 경우입니다. 전쟁 후 두 국가 모두 상태가 말이 아니었죠. 지금은 그때처럼 전쟁이 길지 않겠으나, 그 여파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최근 남아메리카의 몇 나라가 IMF의 원조를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금융위기 때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죠. 우리나라도 그 시절 이후로 수많은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죠.
어쨌든 플라자 협정은 일본을 몰락시켰고, 미국의 경제 패권국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켰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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